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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2/05 추천도서 '생각의 좌표'
  2. 2009/05/19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4)
  3. 2009/05/14 똘레랑스, 증오, 그리고 촛불시위
사람은 편함을 추구한다. 남에게 불편함은 물론 고통과 불행을 안겨주면서까지 나의 편함을 추구한다. 함께 더불어 산다는 말은 내 편함의 추구가 남에게 불편함, 고통, 불행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말과 만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편함을 추구할 뿐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

사람은 이성적 동물, 합리적 동물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

기존 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

너무 늦어서 탈이지만 그래도 종내는 자각증세를 보이는 암보다도 더 지독해서 그릇된 생각, 그래서 내 삶을 그르칠 수 있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에도 자각증세가 없다.

생각의 좌표 중에서


생각의 좌표 - 10점
홍세화 지음/한겨레출판

초반부는 줄긋기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좋은 아키텍처가 나온다는 내 일에 대한 깨달음도 얻었다.
스무 페이지 남짓 읽을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내 교육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과
이를 낳은 어두운 과거사의 굴레와 현재의 그림자에 대한 암울한 인식은 편안하게 수용하기 어려웠다.
일단 1/3 정도 읽고 잠시 멈췄다. 나머지는 조금 휴지기를 두고서 읽으려고 한다.

얼마나 읽을지 모르지만, 조만간 한겨레 신문을 구독하기로 마음먹었다.
망설이고 있었는데 생각의 좌표에서 논한 한계레신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때문에 마음을 정했다.
구독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침에 여유를 갖는 삶을 살고 싶어서다. [각주:1]
두 번째는 좋은 신문을 표방한 한겨레 인터넷 신문에서 저질 광고를 빼줬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다.


어머니가 통장이라 구청에서 구입하는지 접힌 채로 버리는 문화일보를 넣어준다.
한겨레신문으로 바꿔 줄 수 있는지 확인 후에 구독부터 끊고 한겨레로 바꿔야겠다.
  1. 워낙 아침잠이 많아 효과는 미지수지만, 돈이 아까워서라도 한 달에 하루라도 일찍 읽어나면 만족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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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회
대학 다닐 즈음이었나 제목 정도는 들어봤을텐데, 워낙 책을 등지고 살던 때였을 터이다. 다시 이 책을 소개받은건 최근 읽은 어떤 책[각주:1]에서이다. 제목만 소개되었는데 단박에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에 감동하듯 이 책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빠르게 감화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담백한 글솜씨가 부러웠다. 쉬운 문장만으로 미사여구 없이 담아내는 글에 완전히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얼핏 연상되었다. 한 사람의 생활과 함께 시대의 역사 그리고 우리[각주:2]의 아픔을 아무 차분하게 쓰고 있다.

부러움은 이내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치열한 삶을 보며 내 흐르러진 삶과 정신을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는 386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를 인식하고 저항하며 살아낸 선배들을 그때로 돌아가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10점
홍세화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책 마지막에 노파심인양 정색(?)하고 설명한 똘레랑스. 이미 '남은 삶에선 똘레랑스를 소중한 가치로 인식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터인데, 정색하고 설명하는 내용은 학창시절 나이든 선생님의 잔소리처럼 다소 지루했다.

혹시 아직도 이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무조건 일독하시길 권한다.

* 이하는 메모하고 싶은 부분

빠리에서는 각자 자기에게 맞는 유행을 찾는 데 비하여, 서울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한 유행을 따른다. 다른 말로, 빠리에서는 유행이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는 데에 빈하여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유행에 종속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경향도 결국 한국 사회의 획일성과 프랑스 사회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94쪽

"초보자라고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모든 직업에 데뷔 시기는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몽마르트로는 꽤 중요한 길이니까 잘 알아두세요."  <중략>
나는 사라져가는 그에게 끝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서른 살이 될까 말까 한 그가 다시 만나지 않을 이방인에게 베푼 관대함과 친절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121쪽

이 같은 빠리의 택시 상황을 이해하면, 네 사람의 일행에게 두 대의 택시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빠리 택시운전사들 사이의 집단 연대감을 이해하게 된다. 네 사람을 태우면 5프랑의 추가요금이 있는데도 마다하는 것이다.
142쪽

나는 프랑스의 '대학사회'를 잠깐 보고도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이 대학사회를 동숭동 문리대 시절에 이미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강의실에서 교수들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학생총회가 있던 교정에서, 농성장이던 본 4 강의실에서, 연극회에서, 탈춤반에서 그리고 써클 활동을 통하여 이미 경함한 일이었다. 그 경험들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는데 그 같은 문제의식이 프랑스에선 바로 대학의 출발점이었고 또 본질이라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159~160쪽

영업사원인 베르트랑하고 몹시 다툰 적이 있었는데, 한국인 정서의 잣대로 보아 그가 너무 뻔뻔하게 자기 이익을 챙긴다고 느끼던 내가 참지 못하고 터뜨려 싸움이 일어났다. <중략> 한참을 다툰 뒤에 나는 속으로 '요 쥐새끼 같은 놈하고는 다시는 말도 나누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튿날 출근길에 이 친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중략>
 베르트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중략>
 우리에게 설득이란 단어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다. '강요하는 사회'다. 베르트랑과 나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지, 없는 사회인지의 차이로 구분하였다.
136~138쪽

"중국처럼 농토에 비해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농업생산을 집단화한다는 것도 관료주의적 발상이었어요. 적은 농토에서 최대의 생산량을 얻기 위해선 농민의 자발성과 창조성이 가장 중요한데 집단화는 오히려 그것을 막았지요. "
 씰비의 말을 듣다 보니 내가 읽은 글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농업은 우주적인 것이다. 땅과 사람과 하늘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농부는 건듯 부는 바람 한 자락도 예사로 보지 않는다.'
163쪽

만약에 길이 밀려 택시 요금이 자꾸 올라갈 때 그녀가 한마디라도 불평을 했더라면 나는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236쪽

나는 우리의 '옛이야기' 중에 일본의 '오오까의 밀감' 이야기 같은 게 없다는 것을 무척 아쉬워한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여올 것 중에 꼭 한 가지만 말하라면, 나는 주저 없이 '오오까의 밀감'을 선택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제일 먼저 '똘레랑스'를 수입하고 싶듯이. 나는 '오오까의 밀감'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259쪽

개똥 세 개 ... 링크로 대체
285~286쪽

한국의 정치사에선 자유도, 민주도, 인간의 기본권도, 관용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억지와 뻔뻔스러움으로 가득 찬 독재와 증오의 이데올로기뿐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내세워 사용한 '말'과 그 실제는 문자 그대로 정반대였다. 예를 들어, 유신체제의 '민주공화당'이란 말은 실제로는 '독재군주당'이었고, 전두환 정권의 '민주정의당'이란 말은 실제로 '독재불의당'이었다.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온통 거짓된 '말'의 성찬으로 엮여 있다.
318쪽
  1. 후불제 민주주의로 짐작하는데 이 놈의 기억력은 믿을 수가 없다. [본문으로]
  2. 솔직히 '우리'라고 해야 할지, '앞선 세대'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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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회
출퇴근 길에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있는 요즈음 우연한 계기로 미디어몽구란 블로그 영상을 만났다. 생산적인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스포츠를 제외한 뉴스 사이트는 극도로 삼가는데, 택시 기사님의 생생한 인터뷰에 끌렸다. 마침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은 터라 인터뷰 내용의 현장성에 대한 가치를 인식할 수 있었다.

뒤 이어 만감이 교차하는 동영상을 봤다. 촛불 과잉 진압을 담은 영상이다. 며칠전 퇴근 길에 경찰서를 지나는데, 횡단보도 앞에 마치 거리 사진전마냥 처참한 폭도를 담은 사진이 늘어서 있었다. 플랜카드에는 폭력 시위를 알리는 자극적인 문구가 있었고, 전체적인 인상은 특별한 메시지가 있다기 보다 혐오감을 심어주는데 주력하는 듯 했다.

그런 전력이 있어서인지 동영상을 보는데 전경들이 불쌍했다. 진압에 대해 항거하는 시위대가 증오하는 대상이 전경일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이유 없이 혐오의 대상이 되어 있는 젊은 희생양 전경들이 폭발해서 화풀이할 상대를 찾아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가 쓰인 시절에서 급격하게 뛰어 넘은 권위주의 청산의 잔재를 털기 위한 시간이 아닌가 싶은 주제 넘은 해석을 하게 한다.



영상 더 보기: [영상] 촛불 1주년, 시청광장에서 명동까지

영상과 관련한 내용을 메모해둔다.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지, 없는 사회인지의 차이로 구분하였다.

<중략>

그것은 베르트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이 차이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에선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싸우고 이 사상과 저 사상이 논쟁하는 데 비하여 한국에선 사람과 사람이 싸우고 또 서로 미워한다는 사실이다.


하루 아침에 민주주의를 얻을 순 없음을 후불제 민주주의에서 배운 터라 증오심에 휘둘리지만은 않는게 다행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10점
홍세화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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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