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즈음이었나 제목 정도는 들어봤을텐데, 워낙 책을 등지고 살던 때였을 터이다. 다시 이 책을 소개받은건 최근 읽은 어떤 책1에서이다. 제목만 소개되었는데 단박에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에 감동하듯 이 책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빠르게 감화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담백한 글솜씨가 부러웠다. 쉬운 문장만으로 미사여구 없이 담아내는 글에 완전히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얼핏 연상되었다. 한 사람의 생활과 함께 시대의 역사 그리고 우리2의 아픔을 아무 차분하게 쓰고 있다.
부러움은 이내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치열한 삶을 보며 내 흐르러진 삶과 정신을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는 386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를 인식하고 저항하며 살아낸 선배들을 그때로 돌아가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책 마지막에 노파심인양 정색(?)하고 설명한 똘레랑스. 이미 '남은 삶에선 똘레랑스를 소중한 가치로 인식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터인데, 정색하고 설명하는 내용은 학창시절 나이든 선생님의 잔소리처럼 다소 지루했다.
혹시 아직도 이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무조건 일독하시길 권한다.
* 이하는 메모하고 싶은 부분
마치 기대하지 않고 본 영화에 감동하듯 이 책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기에 빠르게 감화되었다. 사실 처음에는 담백한 글솜씨가 부러웠다. 쉬운 문장만으로 미사여구 없이 담아내는 글에 완전히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읽는 동안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얼핏 연상되었다. 한 사람의 생활과 함께 시대의 역사 그리고 우리2의 아픔을 아무 차분하게 쓰고 있다.
부러움은 이내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치열한 삶을 보며 내 흐르러진 삶과 정신을 돌아보게 했다. 그리고는 386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를 인식하고 저항하며 살아낸 선배들을 그때로 돌아가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 |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 ![]() 홍세화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
책 마지막에 노파심인양 정색(?)하고 설명한 똘레랑스. 이미 '남은 삶에선 똘레랑스를 소중한 가치로 인식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터인데, 정색하고 설명하는 내용은 학창시절 나이든 선생님의 잔소리처럼 다소 지루했다.
혹시 아직도 이 책을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무조건 일독하시길 권한다.
* 이하는 메모하고 싶은 부분
빠리에서는 각자 자기에게 맞는 유행을 찾는 데 비하여, 서울에서는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한 유행을 따른다. 다른 말로, 빠리에서는 유행이 사람에게 종속되어 있는 데에 빈하여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유행에 종속되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경향도 결국 한국 사회의 획일성과 프랑스 사회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94쪽
"초보자라고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모든 직업에 데뷔 시기는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몽마르트로는 꽤 중요한 길이니까 잘 알아두세요." <중략>
나는 사라져가는 그에게 끝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서른 살이 될까 말까 한 그가 다시 만나지 않을 이방인에게 베푼 관대함과 친절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나는 사라져가는 그에게 끝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서른 살이 될까 말까 한 그가 다시 만나지 않을 이방인에게 베푼 관대함과 친절에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나의 본보기가 되었다.
121쪽
이 같은 빠리의 택시 상황을 이해하면, 네 사람의 일행에게 두 대의 택시를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빠리 택시운전사들 사이의 집단 연대감을 이해하게 된다. 네 사람을 태우면 5프랑의 추가요금이 있는데도 마다하는 것이다.
142쪽
나는 프랑스의 '대학사회'를 잠깐 보고도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이 대학사회를 동숭동 문리대 시절에 이미 경험했다는 사실이다. 강의실에서 교수들의 강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학생총회가 있던 교정에서, 농성장이던 본 4 강의실에서, 연극회에서, 탈춤반에서 그리고 써클 활동을 통하여 이미 경함한 일이었다. 그 경험들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었는데 그 같은 문제의식이 프랑스에선 바로 대학의 출발점이었고 또 본질이라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159~160쪽
영업사원인 베르트랑하고 몹시 다툰 적이 있었는데, 한국인 정서의 잣대로 보아 그가 너무 뻔뻔하게 자기 이익을 챙긴다고 느끼던 내가 참지 못하고 터뜨려 싸움이 일어났다. <중략> 한참을 다툰 뒤에 나는 속으로 '요 쥐새끼 같은 놈하고는 다시는 말도 나누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튿날 출근길에 이 친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중략>
베르트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중략>
우리에게 설득이란 단어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다. '강요하는 사회'다. 베르트랑과 나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지, 없는 사회인지의 차이로 구분하였다.
베르트랑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 데 반해 나는 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을 하는 그를 미워한 점이다. 그의 주장이 틀렸으면 그 주장을 반박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를 미워했다. 그는 나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에게는 단지 그와 나의 생각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싸운 이튿날 그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평소처럼 대했고 나는 계속 앙심을 품고 있었다. <중략>
우리에게 설득이란 단어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다. '강요하는 사회'다. 베르트랑과 나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서 온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이 차이를 '똘레랑스'가 있는 사회인지, 없는 사회인지의 차이로 구분하였다.
136~138쪽
"중국처럼 농토에 비해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 농업생산을 집단화한다는 것도 관료주의적 발상이었어요. 적은 농토에서 최대의 생산량을 얻기 위해선 농민의 자발성과 창조성이 가장 중요한데 집단화는 오히려 그것을 막았지요. "
씰비의 말을 듣다 보니 내가 읽은 글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농업은 우주적인 것이다. 땅과 사람과 하늘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농부는 건듯 부는 바람 한 자락도 예사로 보지 않는다.'
씰비의 말을 듣다 보니 내가 읽은 글 중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었다.
'농업은 우주적인 것이다. 땅과 사람과 하늘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농부는 건듯 부는 바람 한 자락도 예사로 보지 않는다.'
163쪽
만약에 길이 밀려 택시 요금이 자꾸 올라갈 때 그녀가 한마디라도 불평을 했더라면 나는 그렇게까지 친절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23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