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하려고 한다. 일민형이 몇 차례 전길남 박사님과 박찬모 전 총장님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 하는 내내 동경하는 기색이 연연했다. 사실 그런 분들을 옆에서 본다면 어찌 동경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패션 모델이나 가수를 꿈꾸는 분들이야 동경할 이유가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잘 안다.
일민형이 전박사님의 연대를 읊어주는데, 그 내용보다는 마치 필연적으로 우리나라의 프로그래밍 혹은 인터넷 발전을 위해 등장한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사실 난 프로그래밍 역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워서 전길남 박사님이 누군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대단한 이력을 들으면서 뚱딴지 같이 '필연적으로 이 땅에 돌아온 사람'으로 단정해버렸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어제 새벽 서핑을 하다가 okjsp에 들어갔다. 가끔 심심할 때 사는 얘기 게시판에 들어가곤 했다. 그 외 게시판은 별로 둘러본 기억이 없는데, 어제는 돌연 다른 게시판에는 뭐가 있나 궁금했다. 그 중에서 얼마면돼라는 미소를 짓게 하는 게시판에 들어가봤다. 정규직으로 7~8년차에 4천못넘으면 빙신일까요?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답변은 대부분 일리가 있는 것들이었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반감이 치솟는 답변도 있었다. 프리를 해서 더 받을 수 있는데 한심하다는 식의 답변. 게시판의 다른 글이나 답변을 보면, 그런 부류의 내용이 일정 수준에 달했다.
내가 처음 이 바닥에서 일을 할 때는 프리랜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알던 프리랜서란 사실 프로야구나 축구의 용병처럼 실력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기 때문에 그만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몇 년 후, 주변에서 '프리'라고 하면 눈쌀을 찢푸리는 사람이 늘어갔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프로젝트에서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일은 안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합당한가 부당한가만 계산하면서 수 날을 보내고, 초과 근무를 안하려고 많은 장치를 만들어두고, 새로운 것을 배워서 부담을 떠안을까 노심초사하는 사람. 그러면서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빨리 퇴근하고 기술사 공부를 하는 이도 있었다. 정작 현장에서는 한 사람의 몫을 했는지는 심히 의심스러웠다.
나는 그런 사람만 보면 흥분을 한다. 사실 내 주변엔 그런, 나처럼 흥분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도대체 왜 흥분할까? 그들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그걸 인정하면 그만이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여전히 흥분한다. 게시판 글만 보고도 흥분하지 않았던가? 우습게도 내가 최초로 스터디 그룹을 결성한 것도 흥분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SI가 다 그렇지 뭐.', '다 똑같애'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치 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사람처럼 변해갔다. 8, 9년 전에는 자바 스터디를 구성해서 함께 공부를 하고 VB나 ASP 프로그래밍 실전 경험을 학우들과 공유했었는데, 지금은 업계에서 개선이 일어나게 노력하고 있고, 남는 시간에 KSUG를 운영하는 모습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자 이제부터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이야기를 하겠다. ㅋㅋ 전길남박사님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비슷한 구석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내순전히 내 결심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만 해도 국문과를 선망했고, 점수에 맞춰서 모대학 법대를 가려 했으나,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이) 그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해서 취업이 잘된다는 모교의 한 때 떴던 전공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학교보단 춤 추는 일에서 재미를 발견했다. 제대를 하고 나서 복학하기 이전에 어학연수를 하려던 찰나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한 공백기. 여기까지 보면 지금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삶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가장 큰 원동력에 대해 답안을 써내라고 한다면, 아마도 'SI가 다 그렇지 뭐.', '다 똑같애', '프로그램 같은거 하지 말고, 토익 공부나 해.' 같은 부류의 말들이 될 것이다.
일민형이 전박사님의 연대를 읊어주는데, 그 내용보다는 마치 필연적으로 우리나라의 프로그래밍 혹은 인터넷 발전을 위해 등장한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사실 난 프로그래밍 역사에 대해서는 문외한에 가까워서 전길남 박사님이 누군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대단한 이력을 들으면서 뚱딴지 같이 '필연적으로 이 땅에 돌아온 사람'으로 단정해버렸다.
일단 여기까지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어제 새벽 서핑을 하다가 okjsp에 들어갔다. 가끔 심심할 때 사는 얘기 게시판에 들어가곤 했다. 그 외 게시판은 별로 둘러본 기억이 없는데, 어제는 돌연 다른 게시판에는 뭐가 있나 궁금했다. 그 중에서 얼마면돼라는 미소를 짓게 하는 게시판에 들어가봤다. 정규직으로 7~8년차에 4천못넘으면 빙신일까요?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답변은 대부분 일리가 있는 것들이었고,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그 가운데는 반감이 치솟는 답변도 있었다. 프리를 해서 더 받을 수 있는데 한심하다는 식의 답변. 게시판의 다른 글이나 답변을 보면, 그런 부류의 내용이 일정 수준에 달했다.
내가 처음 이 바닥에서 일을 할 때는 프리랜서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내가 알던 프리랜서란 사실 프로야구나 축구의 용병처럼 실력으로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기 때문에 그만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몇 년 후, 주변에서 '프리'라고 하면 눈쌀을 찢푸리는 사람이 늘어갔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프로젝트에서 그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일은 안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합당한가 부당한가만 계산하면서 수 날을 보내고, 초과 근무를 안하려고 많은 장치를 만들어두고, 새로운 것을 배워서 부담을 떠안을까 노심초사하는 사람. 그러면서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빨리 퇴근하고 기술사 공부를 하는 이도 있었다. 정작 현장에서는 한 사람의 몫을 했는지는 심히 의심스러웠다.
나는 그런 사람만 보면 흥분을 한다. 사실 내 주변엔 그런, 나처럼 흥분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도대체 왜 흥분할까? 그들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고, 그걸 인정하면 그만이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여전히 흥분한다. 게시판 글만 보고도 흥분하지 않았던가? 우습게도 내가 최초로 스터디 그룹을 결성한 것도 흥분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SI가 다 그렇지 뭐.', '다 똑같애'라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치 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사람처럼 변해갔다. 8, 9년 전에는 자바 스터디를 구성해서 함께 공부를 하고 VB나 ASP 프로그래밍 실전 경험을 학우들과 공유했었는데, 지금은 업계에서 개선이 일어나게 노력하고 있고, 남는 시간에 KSUG를 운영하는 모습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자 이제부터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이야기를 하겠다. ㅋㅋ 전길남박사님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만, 비슷한 구석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이러고 있는 이유는, 내순전히 내 결심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다. 대학에 진학할 때만 해도 국문과를 선망했고, 점수에 맞춰서 모대학 법대를 가려 했으나, (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이) 그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해서 취업이 잘된다는 모교의 한 때 떴던 전공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학교보단 춤 추는 일에서 재미를 발견했다. 제대를 하고 나서 복학하기 이전에 어학연수를 하려던 찰나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한 공백기. 여기까지 보면 지금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삶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가장 큰 원동력에 대해 답안을 써내라고 한다면, 아마도 'SI가 다 그렇지 뭐.', '다 똑같애', '프로그램 같은거 하지 말고, 토익 공부나 해.' 같은 부류의 말들이 될 것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