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시간을 줄이자'라는 구호는 수도 없이 보고 또 들어왔다. 하지만,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입장을 갖는 이해관계자가 참여한다. 또한, 대다수는 서로 다른 회사나 부서에 속해 있어, 이해 관계뿐만 아니라 일을 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한 달 넘게 연속으로 치뤄진 회의가 업무에 부담이 될 즈음, 초보PM 안과장의 머릿속에는 슬슬 회의와 회의 사이의 연관성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무척 오랫동안 회의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고 노력해왔다. PM 바로 옆에서 보좌하던 시절에 의사결정 없이 진행되는 회의에 지치는 것을 개선하려고, 사회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던 과거의 일들이 떠올랐다. 때로는 은근히 권위를 내세우거나 노파심에 이야기가 길어지면, PM에 게면쩍을 정도로 말을 끊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회의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때 안과장은 아직 PM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 산 피에트로 성당과 광장 전경(이미지 출처:http://webtour.isuperpage.co.kr/travelinfo/choi_travel_con.htm?ForumID=17&iPage=0&ForumType=AA)

생각을 넓혀 보면 회의의 중요성을 쉽게 부각시킬 수 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자가 광장에 나서서 논박을 펼치는 고대의 민주주의 정치의 장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좀 더 현대적인 이미지를 찾는다면, '100분 토론'은 어떤가? 100분 토론의 묘미는 손석희씨의 절묘한 진행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안과장은 최근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회의에 대해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스프린트(Sprint)라고 하는 2주 정도의 짧은 작업 단계에 대한 마무리 회의인 애자일 회고이다. 애자일 회고는 단순히 이번 단계에 대한 진척 평가를 넘어선다. 팀 구성원의 감성적인 영역까지 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꽤나 흥미롭다. 하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확신이 없다.  

애자일 회고 - 8점
에스더 더비.다이애나 라센 지음, 김경수 옮김/인사이트

오후에 한 차례 더 회의를 하고 나서 안과장은 뿌듯했다. 스스로 회의를 주제하는 경우에 한해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준비한 안건에 대한 처리를 모두 할 수 있었다. 민생법안 처리와 같이 중요한 이슈가 아닌 탓이기도 하겠지만, 안건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지침을 따른 효과가 슬슬 나타났다.

회의록 쓰는 것은 무척이나 번거로운 일 대표주자이기도 하다. 안과장이 PM이 되자마자 오른팔 역할을 하던 서대리가 주로 회의록을 쓴다. 서대리의 회의록 기술 능력은 거의 녹화에 가깝다. 현장의 상황을 거의 정확하게 글로 기술한다.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말 유용한 정보로 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회의 빈도가 잦아지자, 서대리가 점차 회의록 자체를 누락했다. 순식간에 무언가 번쩍 안과장 머리를 스쳐갔다. 안과장은 평소 서대리의 훌륭한 회의록이 꺼림직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이유를 몰랐다.

회의가 난상토론이 되지 않게 사회자 역할을 했던 것처럼, 회의록도 결정사항 중심으로 간결하게 기술하는 것이 좋다.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이들 사이에 무언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 안과장의 직감이었다. 안과장이 주제하지 않은 회의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보전하려면 회의록 기술에 있어서도 동일한 기조가 자리잡아 팀의 회의 문화를 이뤄야 할 것이다.

안과장은 퇴근 길에 회의에 대해 확실하게 정리해둬야겠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회의 아키텍처', '회의 프레임워크' 등과 같은 알듯말듯한 단어들이 머리속을 유영했다. 그러다가 서로 그물망으로 이어진 회의들이 넓혀졌다 좁혀졌다 하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제서야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타이트한 일정에 몰렸을 때, 왜 직감적으로 중요한 마일스톤을 기준으로 거꾸로 회의 일정을 결정했는지 이유를 되짚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거시적으로 회의를 기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의 안에서 의사가 소통하도록 조정하는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자연스레 반추했다. 또한, 단기간에 특정 사안에 대해 촘촘하게 회의를 배치해 팀의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는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판단이 어려울 때나 복합적인 결정이 필요할 때, 다수의 팀원이 하나로 뭉쳐 일할 수 있게 했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 때, 회의에 대한 생각을 일단락 지을 수 있었다. 회의만 잘 관리해도 프로젝트의 굉장한 무기를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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